AI 활용 숙련도 5단계, 나는 어디쯤
"AI 쓰고 있어요" 라는 말이 사람마다 전혀 다른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궁금한 것을 물어보는 것이고, 어떤 사람은 여섯 개 세션을 동시에 돌려놓고 결과를 받아보는 것입니다. 같은 문장인데 하는 일이 다릅니다.
제가 지나온 자리를 다섯 단계로 적어봤습니다. 순서가 있고, 대부분 이 순서대로 갑니다.
1단계. 궁금할 때 AI에게 물어보는 단계
앱을 깔거나 브라우저로 들어가서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때로는 다정한 연인처럼 답해주고, 때로는 엄격한 선생님처럼 몰랐던 것을 알려줍니다. SNS에서 남들이 올린 프롬프트를 따라 사진과 그림도 재미삼아 만들어 보고 신기해합니다.
거의 모두가 여기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AI가 앉는 자리는 검색창 옆자리입니다. 궁금한 게 생기면 들어가서 묻고, 답을 얻으면 창을 닫습니다.
1단계의 특징은 결과물이 대화창 안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좋은 답을 받아도 남는 것은 대화 기록뿐입니다.
2단계. AI로 결과물을 만들기 시작하는 단계
어느 날 생각이 바뀝니다. 이걸로 뭔가 만들어봐야겠다.
웹에 접속해 로그인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GPT 모바일 앱과 데스크탑 앱, 클로드 데스크탑 앱을 깝니다. 이것저것 물어가며 원하는 결과물을 파일 단위로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 문서, 표, 스크립트. 대화가 아니라 산출물이 남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그러다 불편함을 느낍니다. 만든 것을 복사해서 옮기고, 고칠 게 생기면 다시 붙여넣고. 뭔가 다른 방법이 없을까.
웹이나 앱을 만들려는 사람은 이때 개발도구로 넘어갑니다. 기존 개발 환경에 클로드 코드 같은 AI 에이전트를 붙여서 만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신세계입니다. 말하는 대로 코드가 짜이고, 순식간에 결과물이 눈앞에서 돌아갑니다.
개발 경험이 없던 사람이 개발 도구 환경만 익히고 나서 몇 주 만에 과거에는 상상만 하던 앱을 만들어내는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저는 이 구간이 가장 황홀했습니다. 바뀐 것이 회사가 아니라 저 자신이었다고 느낀 것도 여기서였습니다.
3단계. 개발도구를 떠나 터미널로 넘어가는 단계
2단계에서 계속 일을 하다 보면 뭔가 쌓입니다.
AI와 주고받으며 정리한 지침, 반복해서 알려준 우리 회사 사정, 매번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라고 적어둔 규칙. 이런 것이 쌓이면 많은 작업이 더 이상 커스터마이징이 필요 없어집니다. 새로 설명할 것이 없고, 매번 같은 일을 같은 방식으로 하면 되는 상태가 됩니다.
이때부터는 굳이 VSCode 같은 개발도구에 들어갈 이유가 없어집니다. 화면을 열고 파일을 클릭하는 것이 오히려 느립니다. 만들어야 할 산출물이 파일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일 때는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터미널 기반 AI 에이전트로 넘어갑니다. 여기가 3단계입니다.
4단계. 여러 AI 세션을 동시에 돌리는 단계
터미널에서 열심히 작업하다 보면 새로운 것이 걸립니다. AI가 생각하고 작업하는 동안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합니다.
그래서 기다리는 동안 다른 창을 띄웁니다. 또 다른 업무를 지시하고, 또 하나를 띄워 지시합니다. 병렬로 일이 돌아갑니다.
이러다 보면 여러 세션을 한꺼번에 관리할 필요가 생깁니다. 이 지점에서 사람들은 Orca나 커서 같은 도구를 접하게 되고, 터미널 지향적인 사람들은 tmux를 씁니다. 저는 듀얼 모니터에 tmux를 양쪽 3분할로 띄워놓고 여섯 개 세션을 동시에 돌립니다.
그런데 이미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도 세션 창은 언제나 모자라고, 하고 싶은 일과 시킬 일은 계속 늘어난다는 것을요. AI 시대는 워커홀릭에게 천국 같은 시대입니다.
4단계에서 바뀌는 것은 속도가 아니라 역할입니다. 만드는 사람에서 시키고 확인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점점 말로 설명하는 것이 귀찮아집니다. 말이 짧아집니다. 지난 몇 주 동안 대화로 쌓아온 업무 처리 방법들이 간단한 명령어 한 줄로 한 번에 실행되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렇게 에이전트 스킬로 하나씩 정리해 나갑니다.
5단계. AI 화면을 더 이상 보고 있지 않게 되는 단계
다음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느낌이 옵니다.
더 이상 tmux 같은 AI 에이전트 인터페이스를 보고 있을 일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해야 할 일이 이미 스킬과 지침으로 정립되어 AI 내부에서 알아서 돌아가고, 저는 특별한 이슈에 대한 보고와 결과에 대한 보고만 받는 단계.
4단계까지는 화면 수가 계속 늘어납니다. 5단계는 화면이 사라지는 방향입니다.
여기까지 가려면 두 가지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판단 기준이 문서로 나와 있어야 합니다. 제가 매번 보고 결정하던 것을 글로 적어두지 않으면 AI가 저를 대신할 자리가 없습니다. 화면을 안 본다는 말은 결정을 안 한다는 뜻이 아니라, 결정을 미리 해두었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는 잘 됐을 때도 알림이 와야 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만 오는 알림은 알림이 고장난 것과 아무 일도 없는 것을 구별해주지 못합니다. 정해진 시각에 돌라고 적어둔 자동화가 하루에 열일곱 번밖에 안 돈 적이 있었는데 화면은 내내 초록불이었습니다. 안 보고 있으려면 안 봐도 되게 만들어놔야 합니다.
단계별로 정리하면
| 단계 | 무엇을 하나 | 무엇이 남나 |
|---|---|---|
| 1 | 궁금할 때 물어본다 | 대화 기록 |
| 2 | 결과물을 만든다 | 파일 |
| 3 | 터미널에서 일을 시킨다 | 지침과 스킬 |
| 4 | 여러 세션을 동시에 굴린다 | 처리량 |
| 5 | 보고만 받는다 | 시간 |
단계를 건너뛸 수 있나
건너뛰기 어렵습니다. 앞 단계가 뒤 단계의 재료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1단계는 AI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에 대한 감각을 만듭니다. 2단계는 결과물을 만들어보면서 우리 회사 일이 어떻게 쪼개지는지 알게 합니다. 3단계에서 쌓이는 지침이 없으면 4단계에서 여러 세션을 돌려도 세션마다 처음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4단계에서 시키고 확인하는 연습을 안 하면 5단계에서 무엇을 보고받아야 하는지 모릅니다.
지침 없이 3단계 도구부터 잡으면 그냥 어려운 터미널일 뿐입니다. 도구가 단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인 것이 다음 도구를 필요하게 만듭니다.
지금 어디쯤인지부터
저는 4단계에서 5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을 읽는 분이 1단계에 계셔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어디쯤인지 아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보입니다. 2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프롬프트가 아니라 결과물 하나를 끝까지 만들어보는 경험입니다. 3단계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새 도구가 아니라 지침을 적어두는 습관입니다.
오늘도 AI와 함께 뭔가를 만들고 계신 여러분 모두를 응원합니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편하게 물어보세요.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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