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문답법으로 AI에게 배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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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앞에서 묻고 답이 오간다 소크라테스 흉상 앞에서 말풍선이 좌우로 엇갈립니다. 뒤로 갈수록 또렷해지는 것은 되물을수록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Dialogue 한 번 물으면 검색이고 · 되물어야 문답이다 Dialogue 한 번 물으면 검색이고되물어야 문답이다

요즘 제가 무언가를 배우는 방식은 학교에서 배운 방식과 전혀 다릅니다. 강의를 듣지 않고, 책을 처음부터 읽지도 않습니다. 대신 계속 묻습니다. 그러다 알게 됐습니다. 이건 새로운 방법이 아니라 2400년 전 아테네에서 쓰던 방법입니다.

소크라테스는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강의를 한 적이 없습니다. 책도 한 권 쓰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일은 사람을 붙잡고 질문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상대가 용기를 안다고 말하면 그것을 정의해 달라고 합니다. 정의가 나오면 반박하지 않고, 그 정의가 안 맞는 경우를 하나 묻습니다. 상대가 정의를 고치면 또 안 맞는 경우를 묻습니다. 몇 번 반복하면 상대는 자기가 그것을 몰랐다는 지점에 도착합니다. 이 막다른 길을 아포리아라고 부릅니다.

자기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만이 진짜로 묻기 시작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역할을 산파술이라고 불렀습니다. 지식을 넣어 주는 게 아니라 상대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플라톤의 메논에는 기하학을 배운 적 없는 소년이 질문만 받고 정사각형 면적을 두 배로 만드는 법에 스스로 도달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크라테스는 답을 알려준 적이 없습니다.

왜 그게 효과가 있었는가

남이 준 결론은 잘 남지 않습니다. 내가 좁혀서 도착한 결론은 남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첫째, 자기 문장으로 정의를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어디까지 아는지가 드러납니다. 강의를 들을 때는 이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해한 것 같은 기분과 이해한 것을 구별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반례를 맞으면서 지식의 경계선이 그려집니다. 지식은 문장이 아니라 경계선입니다. 이 규칙이 어디까지 적용되고 어디서부터 깨지는지를 아는 것이 아는 것입니다.

셋째, 막다른 길에 도착한 사람은 그다음 답을 잊지 않습니다. 필요해서 찾은 답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소크라테스가 한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방법에는 치명적인 제약이 있었습니다. 묻고 답해 줄 사람이 앞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조건이 붙습니다. 아테네에 살아야 하고, 광장에 나갈 시간이 있어야 하고, 소크라테스가 그날 기분이 괜찮아야 합니다. 그가 아는 분야를 벗어나면 대화는 거기서 멈춥니다. 같은 질문을 세 번 하면 상대가 지칩니다. 무엇보다 사람 앞에서 모른다고 말하는 일에는 비용이 듭니다. 그래서 이 학습법은 역사적으로 늘 극소수의 특권이었습니다. 스승 옆에 붙어 있을 수 있는 사람만 썼습니다.

그 제약이 사라졌습니다

지금 저는 클로드와 문답법을 합니다. 그리고 위에 적은 제약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시간 제약이 없습니다. 새벽 3시에 물어도 됩니다. 반복 제약이 없습니다. 같은 것을 다섯 번 다르게 물어도 상대가 지치지 않습니다. 체면 문제가 없습니다. 이것도 모르냐는 말을 들을 일이 없으니 정말로 모르는 것을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게 생각보다 큽니다. 사람에게 물을 때 우리는 늘 아는 척이 섞인 질문을 하고, 그러면 답도 아는 척에 맞춰서 옵니다. 분야 제약도 없습니다. DNS를 묻다가 세금을 묻고 다시 계약서 문구를 물어도 대화가 끊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알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통째로 줄었습니다. 예전에 몇 달 걸리던 일이 며칠이 되고, 며칠 걸리던 일이 몇십 분이 됩니다. 배움의 총량에 걸려 있던 상한선이 사라졌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렇게 배웠습니다

몇 년째 방치했던 홈페이지를 옮기던 때 이야기입니다. 저는 DNS를 몰랐습니다. A 레코드와 CNAME의 차이도 몰랐습니다.

강의를 찾아 듣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 순서로 물었습니다.

  • 지금 이 도메인은 어디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 A 레코드와 CNAME은 무엇이 다릅니까. 왜 둘 다 있습니까
  • 최상위 도메인에는 CNAME을 못 쓴다고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 그러면 www 는 CNAME 인데 최상위는 A 레코드라는 뜻입니까. 제가 이해한 게 맞습니까
  • 프록시를 켜면 인증서 발급이 깨진다는 말이 있는데, 무엇이 무엇을 깨는 겁니까
  • 제가 지금 이 상태에서 값을 잘못 바꾸면 사이트가 얼마나 오래 안 열립니까

마지막 질문이 중요합니다. 이건 지식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 제가 감당할 위험을 묻는 질문입니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이쪽이 더 필요합니다.

한 시간쯤 이러고 나면 저는 DNS 전문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제 도메인은 옮겨져 있고, 다음에 비슷한 일이 생기면 어디를 봐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견적 자동화도, 그걸 n8n으로 옮긴 일도 같은 방식으로 넘어갔습니다.

한 번 묻는 것은 문답이 아닙니다

여기가 갈리는 지점입니다. 많은 분들이 AI에게 한 번 묻고 답을 받고 창을 닫습니다. 그건 검색을 조금 편하게 한 것입니다. 문답법은 답을 받은 다음에 시작합니다.

받은 답에 다시 묻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럼 이 경우에는 어떻게 됩니까. 이건 제 상황에도 적용됩니까. 방금 답에서 A라고 했는데 아까는 B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을 제 문장으로 다시 말하고 맞는지 확인받는 것. 이게 소크라테스 앞에서 정의를 내놓는 것과 같은 자리입니다. 이해한 기분과 이해한 것이 여기서 갈립니다. 저는 이 한 가지 습관이 가장 크게 남았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은 묻고, 답을 받으면 또 묻습니다. 그렇게 하면 궁극적으로 알게 됩니다. 이것이 AI 시대의 학습법입니다.

다운로딩은 의도가 있을 때 일어납니다

전에 매트릭스에서 네오의 머리로 헬기 조종법이 다운로드되던 장면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 장면을 다시 보면 한 가지가 눈에 걸립니다. 다운로드가 시작되기 전에 네오에게는 옥상을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조종법은 그 목적에 붙어서 들어왔습니다.

AI 안에 있는 지식을 제 뇌와 제 몸으로 옮기는 일도 똑같습니다. 아무 목적 없이 좋은 질문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문제를 이번 주에 없애고 싶은지, 결국 무엇이 되고 싶은지가 정해져 있어야 질문이 나옵니다. 그 의도가 없으면 나오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검색어입니다. 그리고 검색어에는 답이 안 붙어 옵니다.

해답은 AI 안에 있지 않습니다. 내 의도를 담은 질문 안에 있습니다. AI는 그 질문에 대답할 뿐입니다. 질문이 흐릿하면 대답도 흐릿하게 옵니다. 이건 프롬프트를 잘 쓰는 기술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하려는 사람인지 아는 문제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이제 24시간 옆에 앉아 있습니다. 지치지도 않고, 어떤 질문에도 그것도 모르냐고 하지 않습니다. 남은 것은 하나입니다. 무엇을 알고 싶은지 내가 정하는 것.

물을 사람이 없다는 변명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편하게 물어보세요.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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